“ The wind never builds its house1 ”
2022 동시대 미술 기획전 <남겨진 것들>
김영세(b.1952)의 「무용지용(無用之用)」- 재료에 혼입돼온 생의 리얼리티
김영세는 평소 대형 캔버스에 스케일 큰 제스처로 추상적 이미지를 잘 그리는 화가로 알고 있다. 특히 빠른 붓질에 반응한 물감의 흔적을 남긴 단색조의 화면이 매력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유동성 성질의 물감을 즐겨 사용하는 탓에 우연성이 개입한 효과가 더해진 비구상적 이미지의 형상이 감각적인 색채와 함께 매우 세련되고 지적인 인상을 주는 화면 구성으로 주목받는다. 평면 회화 분야에서 감각적인 추상표현주의적 페인팅을 오랫동안 탐구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좀 색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내놓아 큰 변화를 감지하게 되었다.
캔버스 대신 종이 위에 아크릭 물감을 채택하여 전면 균질적인(all over) 색면회화를 추구한 것 같아서 첫인상에 색면추상회화(color field painting) 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화면 아래 긁히고 찢긴 흔적들이 드러나며 마치 노역에 시달린 세월 혹은 세파에 노출되어 입은 상처들을 감추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알아채게 되었다. 바로 말하자면 헌 폐지 위에 그린 그림, 아니, 채색 화면인 셈이다. 마침 작가가 쓴 출품의 변이 있어서 보았더니 “골판지의 골판지에 의한 골판지를 위한 작품에 집중”하였다고 밝힌다.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작품명은 아마도 바탕 매체를 캔버스가 아닌 사용 후 버려지는 박스용 종이를 재료로 재사용하는 데서 붙여진 이름 같다. 용도를 다한 폐지인 골판지를 펼쳐 그 위를 전면 균질적인 방법으로 ‘올오버 페인팅’
한 것이다. 강렬한 발색과 미니멀한 채색 방법 외에는 화가의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순수한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종이 바탕의 재질에 남은 희미한 자취들이 마치 과거에 겪은 사건들처럼, 사물로서 많은 은유를 품고 있다.
이를테면 상자 표면에서 뜯겨나간 자리에 드러난 골판지 특유의 무늬는 아물지 않은 큰 상처처럼 느껴진다. 여러 가지 형태로 눌린 자국들은 작은 생채기 같이 물감 아래서 그 흔적을 다 감추지 못한 채 사연들을 드러낸다. 애초 상자를 접었던 자리에 생겨난 골은 화면을 가로 세로로 구획 짓는 형식으로 기하학적 분할 선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비대상 추상 양식 특유의 형식과 방법에 채택한 이질적인 매체의 효과가 울림 있는 메시지가 되어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현실과 별개인 순수한 미적 지각과 모더니즘의 조형적인 방법적 논리로 구현되던 추상미술의 형식을 삶의 생생한 리얼리티가 있는 형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은 분명 새로운 작품 세계로의 확장 의지로 보인다.
“상품의 포장지 역할을 다한 포장 박스는 재생공장으로 또는 쓰레기더미에 묻혀 사라진다.
노인의 주름과도 같은 골판지 박스에 연민의 손길을 내밀어 보았다. 사라지는 것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있음’ / DASEIN / 은 사라짐으로 남겨진다.”라고 김영세 작가는 그 동기를 밝힌다.
동일한 작품명으로 19점을 출품하고 있는데 모두 골판지에 아크릴(acrylic on corrugated cardboard)을 재료로 사용했으며 작품의 규모도 한결같이 95x86cm의 크기로써 2022년에 제작했다.
김영세 작가는 대구 출신이면서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거쳐 독일 뒤셀도르프 국립미술대학에서 석사를 했다. 지금까지 모두 18회의 개인전을 했고 국내외 수많은 단체전에 참가해온 경력이 있다.
2022.12 김영동 미술평론가
김영세 근작 (2016-2019) - “무한공간에서의 표현과 상상력”
모더니즘 화가들의 목적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소묘를 익숙하게 하면서도 그 방법을 잊어버리려고 했으며, 무엇보다 규범화된 전통이나 구속에서 벗어나거나 손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 결과적으로 모더니스트는 추상이라는 양식을 선호하면서 회화의 순수성이나 표현의 자유로움 자체를 추구하기에 이른다. 이들 생각에 회화란 결코 묘사나 손재주 자랑이 아니라 그 무언가 또 다른 목적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싶다. 부조리한 현실이나 인간의 조건들을,..순수회화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1991.김영세 작가노트 중에서)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화에 대한 김영세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표현과 관념들이다. 오랜만에 대구 그의 작업장에서 만난 나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생각, 나만의 진솔한 표현이 가장 중요하지 않는가?” 라고 현재의 작가적 입장을 솔직히 토로한다. 그 동안 표현 양식이나 회화적 관념이 변하기도 했으나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회화에서 자유로운 작가 정신을 고집스럽게 지켜 나가고 있다. 마음이 찡하다.
최근에 이와 유사한 생각의 ‘회화에 관한 소고’를 필자에게 보내 왔다.
“나는 내게 ‘그림 그리는 행위의 이유’를 다시 묻는다. 고흐와 나는 회화라는 이름으로 연결되겠지만 나는 반 고흐가 아니다. 자유의지와 예술의지의 끈은 헝클어졌다. 그러나 의지와 미망의 실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바람이 분다.
꽃이 떨어진다.
바람은 집을 짓지 않지만
나는 나의 집에 流刑된 囚人이 된다.
창문을 뚫고 바람이 쏟아진다.
가슴으로 안는 바람아!
바람아!
나는 바람 따라 걷는 꿈이다.
바람이 분다.” (2019. 김영세)
김영세는 1970년대 후반 서울 홍익대를 졸업하고 1982년부터 1990까지 독일의 쾰른과 뒤셀도르프에서 미술대학을 다시 다녔다. 건축과 회화 전공으로 독일에서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하여 현재까지 고향인 대구에서 강의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작품 내용으로 양식적 변화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초기로 여러 형상이 혼재되어 등장하는 신표현 양식과 두 번째는 2000년대 이후 기호와 형상을 병행시키는 혼합 구조 회화이다. 이는 기하학적 형태와 신표현의 혼합 양식으로 구분되며, 끝으로 세 번째는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진행되는 추상표현 양식으로 흑백 모노크롬의 단색화 추상으로 행위와 시간성이 강조되는 작업이다.
첫 번째 양식은 90년대 초기 회화로 소위 그라피티 아트를 연상시키는 신표현 작업이다. 이는 당시 독일을 대표하였던 신표현주의 영향을 엿 볼 수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독일에서 생활하였던 도시적 삶과 작가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초기 회화는 그 자신의 말처럼 “인간의 욕망, 권력의 비아냥거림이며,.. 허위와 가식에 대한 내면의 고발”로 현실문제가 부각된다.
두 번째 양식은 귀국 후 10여년이 지난 회화적 변화이다. 이는 무질서에 가까운 자유로운 표현을 정리하듯 화면을 이등분하면서 계산적이며 논리적인 회화로 변신이다. 화면의 한 면은 기하학적 구조 형태가 등장하고 다른 한 면은 구체적 형상이 나타난다. 새나 수레 등, 구체적 이미지가 주목된다. 기호/형상, 자연/인간, 질서/무질서, 또는 이성과 감성의 충돌이 이루어지는 이분법적 회화 양식으로 사회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신표현의 혼합양식이다.
세 번째는 2019년 마노 갤러리 기획 전시 작품들로 2010년 이후 제작되기 시작한 모노크롬 추상이다. 이는 기존의 단색화와 다른 추상표현으로 마티에르의 촉감이나 두터운 제스뜨(몸짓) 효과 다른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게 하는 관념적 액션 페인팅에 가깝다. 수묵화처럼 보이는 흑백의 표현성으로 단색으로 구축된 공간의 깊이와 우연의 이미지들은 무한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표현과 상상력을 이끌어 낸다. 관객의 침묵은 반복된 만남으로 속 깊은 대화를 이끈다.
단색화의 본 시리즈 작업 방식은 매우 독특한 방법론을 갖는다. 먼저 작가는 캔버스 바탕에 밑칠로 흑색을 정성스레 덮는다. 주로 짙은 흑색이나 바탕을 반복적으로 겹겹이 칠하면서 다음 단계를 구상한다. 밑칠이 마르면 다음 단계로 흰색 아크릴 물감으로 그 위를 덮는다. 이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흰색을 덮자마자 다음 단계로 붓이 아닌 물수건으로 그림을 그리듯 무언가 흔적을 남기는 제스뜨(몸짓)이다.
그는 “나의 작품은 지움으로 생성된다. 지움으로 그려지는 그림으로 지움의 흔적이다. 사라짐으로 드러나는 그림이다.” 라고 근작 방법론에 관해 이야기 한다. 구체적으로 작가는 캔버스 바탕의 흰색이 마르기 전 빠른 시간에 물수건으로 문지르거나 지우면서 검은 바탕을 드러나게 한다. 때로 손가락을 사용하기도 하나 주로 젖은 헝겊으로 시간의 흐름을 추상화 시킨다. 수묵화의 속도감과 비교된다. 결과적으로 감추어진 흑색 화면이 순간적 행위의 결과로 드러내면서 추상표현 작업이 완성된다. 우연과 즉흥의 몸짓이 무한공간에서 이미지 생성과 상상력이 탄생되고 있다. 작가의 의도적 행위와 우연의 결과들이 자유로운 자아의 영혼과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한다.
순간적으로 흰색 화면에 숨겨진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작업, 흑백의 단색조 화면에 거친 붓질처럼 드러내는 행위의 흔적들, 비로소 작가는 선이나 색채, 형태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회화의 잡다한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운 자아를 추상표현으로 담는다. 비록 드러내는 것은 아주 작고 순간적이나 시간의 흐름을 압축시킨 행위의 결과로 화면에 나타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으로, 그 자체이다. 여기서 작가는 회화의 궁극적 목적을 찾는다. 기존의 회화적 표현방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관념과 행위의 독특한 추상표현에 비평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나아가 30여년 외길의 전업 작가로 끈질긴 지속성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2019.11. 유재길(조형예술학 박사. 미술비평)
Kim Youngsae recent work (2016-2019) - “Expressions and Imagination in Infinite Space”
The goal of artists is not to draw well, skillful drawing, while they familiarize themselves in drawingdrawing, they also try to forget and further more to escape the standardized traditions and restraints, to refuse in becoming slaves to their hand. As a result, Modernists have become to prefer the method of abstract while pursuing the purity of painting or the freedom of expression itself. To them, painting is more than just a portrayal or boast of skilll, but rather evokes thought of somewhat other purposes. If so, what would be their eventual purpose?
“I want to draw. The irrational reality or conditions of humanity,.. isn’t pure painting about freely expressing one’s self?”(abstract from 1991. Youngsae Kim artist note)
Even now, after 30 years, Kim Youngsae’s thoughts stay unchanged. The expressions and ideas that sets him free. When I visited him after a long time at his work space in Daegu, he expressed his thoughts as an artist as “The work I wish to do,.. isn’t thoughts that are my own and no one else’s and my honest expressions are what truly matters?”. Though his style of expression or concept of painting may have changed in the past, even now after decades his painting tenaciously portrays observes athe free spirit of an artist. It touched my heart.
Recently he had sent me a ‘view on painting’ that was similar to this.
“I ask myself again ‘the reason behind the action of drawing’. Myself and Gogh are connected through the means of painting, but I am not Gogh. The strings that are the will of freedom and the will of an artist are entangled. But I can not shake the doubt that the string of will is connected to fallacy....”
“The wind is blowing.
Flowers fall.
Though the wind does not build the house
I am a prisoner(囚人)that is banished(流刑) to my own home.
The wind flows through the window.
Wind that cradles to the heart!
Wind!
I am a dream that walks after the wind.
The wind is blowing.” (2019. Youngsae Kim)
Kim Youngsae graduated Seoul Hongik University in the late 1970’s and went to Art College again at Cologne and Dusseldorf from 1982 until 1990. After he finished studies in architecture and art in Germany, her returned to Korea and has actively worked as a professor and artist at his home town in Daegu to present.
After the late 1980’s the change in style of his work can be recognized in 3 major categories. First of which dates to the early 1990’s where various mixed forms appear in a Neo-expressionism style and the second from the late 2000’s with a style that parallels signs and form in a mixed structural painting. This is categorized as a mix between geometrical form and neo-expressionism. Lastly, the third style dates from late 2010’s to present as an abstract expressionistic style, a black and white monochrome abstract style of work that emphasizes on performance and time.
The first style is a neo-expressionism painting style from the early 90’s that is reminiscent of the, so called, graffiti arts. This is influenced by can be seen as influence from the neo-expressionism style in Germany that was then popular in Germany. . Details also depict the artist’s urban life and personal stories while living in Germany. Early paintings, as self said, highlights the realistic problems such as “the inner accusations of human desires, the sarcasm of power,… fallacy and pretense”.
The second change in style dates to 10 years after returning to Korea. His painting changes to a divided picture of calculation and reason, as if to bring order to his free expression s that was close to disorder. While geometric structural forms appear on one side, a detailed form appears onin the other. Attention is caught towards the detailed images of birds, carriages and such. A dichotomous painting style which collides between Signs/Forms, Nature/Human, Order/Chaos, or Reason and Sensibility. A mixed style of neo-expressionism that requires social interpretation.
The third are the 2019 Mano Gallery private exhibition work pieces, monochrome abstractions that were started to be made after 2010. This differs to the monochromatic style with abstract expressions that is more closecloser to conceptual action painting as that notions Matière’s touch, the strong effects of gesture (geste) and the flow of a different time. A black and white expression that resembles a ink and wash (sumie) painting which brings out the free expression and imagination in a monochrome constructed space with depth and coincidental images. The silence of the audience leads a heart deep conversation through repeated encounters.
The actual monochrome series work possesses a very unique methodology. First the artist carefully paints black as undercoat on the canvas. black with care as the under colour. Primarily the next stage is conceptualized during the repeated layering of the black base colourcolor. When After the black color dries, under colour has dried, white acrylic paint is used to cover the black under colourcolor as the next stage. The most important part of this stage is to utilize wet towels and not a brush in a gestgesturee (gesture) to wipe away the white layer as if drawing to leave some kind of a trace.
He talks about the methodology of his recent work as “my work is made from erasing. As it is drawn by erasing, it is a vestige of erasing. It is a painting that reveals is revealed with disappearance”. In detail the artist uses a wet cloth to promptly scrubs or erases the white layer on canvas before it dries to reveal the black under paint. Sometimes fingers are used also but the main tool is the wet cloth to abstract the passageflow of time. This compares with the speedy ink and wash (sumie) painting. FinallyFinally, the black colourcolor that was hidden is revealed as a result of momentary action, completing the abstract expression of work. due to the instant actions and as its results complete the abstract expression. Images and imagination are given birth to in an infinite space through coincidence and extemporaneous gestures. The intentional acts and coincidental results form a soul and presence of free consciousness.
Work that extemporaneously brings out something that was hidden under the white veil, the vestiges of acts that resemble a rough brush on the black monochrome sheet, at last the artist has broken free from the lines or colourscolors, the details of forms that were numerous problems of painting and encase the free consciousness in abstract expression. Though what shows is very small and instant the what is shown on canvas resulting from acts of compressed flow of time is presence itself. We find the artist’s eventual purpose here. Breaking free from the existing frames of painting expressions to form ideas and distinctive abstract expressions unique to one’s self, creating critical sympathy and further more would like to applaud the 30 years of tenacious endurance down a single path as a full time artist.
2019.11. Jae-Gil Yoo (PhD. of Fine Arts. Art Critic)
상품의 포장지 역할을 다한 포장박스는 재생공장으로 또는 쓰레기더미에 묻혀 사라진다.
노인의 주름과도 같은 골판지 박스에 연민의 손길을 내밀어 보았다.
사라지는 것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있음’/Dasein/은 사라짐으로 남겨진다.
Kim Youngsae -
김영세. 2022. 12.